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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전시) 현대 한국화가 이지호 초대전 <꽃과 새와 여인> (10.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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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큐레이터 작성일17-09-28 18:01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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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자료제공 : 신선미술관>

심상(心象)의 상징으로서 자연 -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현대적 해석

조송식 철학박사(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미술학부 교수)

 

인생에서 나이 오십은 매우 의미 있는 시점이다. 공자가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였듯이, 오십에 와서 자신의 삶에 대한 존재적 의미를 희미하게나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깨달음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지만, 특히 인생의 성숙함과 함께 예술의 완전함에 대한 성찰이 뒤따르는 예술가에게는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지천명에 들어선 이지호 박사의 개인전이 더욱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지호 박사는 공식적으로 1989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과 이에 대한 예술로의 승화를 추구해 왔다. 그의 작업 세계를 가볍게 돌이켜 보면, 그는 남도의 전통남종화에서 실경산수화 등을 거쳐 추상화, 민화풍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왕성하게 작업을 시도해 왔다. 그 자신은 “방만하고 다양한 장르의 미완의 붓질만 해 왔다.”고 자책하고 있지만, 이것은 그의 왕성한 “끝없이 분발하는[自强不息]”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그의 작업에 인생의 의미와 예술로의 승화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음을 알 때, 그의 고백은 완전함을 지향하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내면적인 절규라 할 수 있다. 당연히 그의 작업태도와 작품에는 진지함과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작업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이어져 왔다. 첫째는 그가 나서 자랐던 자연에 대한 접근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자연의 본질을 조형적으로 묻는 것이었다. 그는 사방이 바다로 쌓인 섬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때문에 그가, 대자연에 순응하며 동화되었던 인간의 역사적 흔적, 즉 남도와 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답과 천수답의 경계선(이랑과 고랑)을 통해 자연의 근원을 묻고자 하였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여기에서 생동하는 선의 율동으로 해답을 찾았다. 그가 사실적인 재현에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 도달한 것이 추상적인 선의 약동이다. 이는 대자연의 기운이지만, 또한 인간의 노동이 시간을 통해 자연 속으로 녹아들어간 삶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이를 “인간의 삶과 생명의 율동성”이라고 규정하였다.

두 번째는 자연에서 찾은 인간 생명의 율동성을 자연으로 환원시키는 작업이다. 이는 그의 내면에 잠재되었던, 어려서부터 동경해 왔던 생명의 근원인 바다로의 회귀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답과 천수답이 있는 산이나 섬을 그리면서 추출한 생명의 율동성을 물결, 즉 파형(波形)으로 귀결시켰다. 중국 청나라 화가이자 이론가인 석도(石濤)가 그의 저서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畵語錄)』에서 산의 형상에서 바다의 형세를, 바다에서 산맥의 약동을 보았는데, 이는 이지호 박사가 추구한 조형과 우연스럽게도 일치한다. 다만 다른 것은 그는 파형(波形)을 더 발전시켜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바다와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모든 존재가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잠재적 욕구로 확장시켰다. 그가 “자연의 순리와 율동성”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rhythm wave>에서 지구 전체가 물결의 약동으로 가득한 것은 이를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지금 그가 한층 시도하고 있는 민화(民畵)풍의 회화이다. 이는 이전부터 간간히 그 가능성을 시도하였던 것인데, 이번 개인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그의 회화적 역정을 통해 볼 때, 이 민화풍 회화는 앞에서 이야기한 “인간의 삶과 생명의 율동성”과 “자연의 순리와 율동성”의 조형적 귀결점으로서, 그가 추구하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회화적으로 실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민화가 갖는 친숙함과 자연스러움이 그의 작품에서 기조를 이룬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민화풍 작품을 네 가지의 조형적인 특성으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이지호 박사의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여전히 이전부터 시도해 왔던 선, 즉 파형이 주된 요소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 구릉이나 천수답에서 추상화시키고 이를 자신의 내면에 잠긴 생명의 근원인 바다와 연결시켜 조형화한 파형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를 새롭게 변화시켰다. 그것이 좀 더 간결하면서 형식화된 것이다. 그의 작품이 이전보다 편안하고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이전의 작품이 구상적인 형상에서 추상적인 세계로 전개되었다고 한다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추상적인 세계에서 구상적인 형상의 추구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이 구상적인 형상은 외재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욕구를 드러낸 것이다. 즉 심상(心象)의 상징으로서 구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는 형상을 평면적으로 해체시켜 문양화시킴으로써 친숙한 인간적인 조형으로 다가오도록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 중국 미학자 리쩌호우(李澤厚)가 동양에서의 조형적인 발전을 사실에서 추상으로, 다시 추상에서 일상적 문양으로 전개되었다고 보았는데, 이를 이지호 박사의 조형적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출품된 작품에서 <rhythm> ⟶ <rhythm wave> ⟶ <rhythmic movement> ⟶ <dreamland>, <a girl dream>, <angel of the sea>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다음으로 색채의 강렬함을 들 수 있다. 이는 민화의 오방색을 연상시킨다. 주지하고 있듯이 오방색은 다섯 가지의 색을 말하지만, 그것은 개별적인 대상의 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색이다. 즉 오행(五行), 오감(五感), 오성(五聲), 오미(五味) 등과 같이 ‘오()’란 숫자는 동아시아 전통에서 모든 것,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오방색에서 나온 강렬하고 상징적인 색감은 여인, 물결, 산과 같은 형상의 상징성뿐만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는 대관(大觀)적인 시점과 서로 어울려 그의 작품을 더욱 의미 있게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상징성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이는 그가 추구해온 일련의 과정과 관련하여 살펴볼 때 더욱 부각된다. 물론 이는 모든 화가에게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특히 이지호 박사는 작품을 순간순간 대외적인 환경에 따라 그리기보다는 긴 호흡을 갖고 미래를 내다보며 작업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그의 작업의 변화에는 일관된 자신의 내재적인 필연성이 잠재되어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개별적인 삶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하되 다시 초월하여 보편적인 이상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그는 세계는 “자연과 인간은 무한한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면서 조화되어 있다”고 보고, 이로 회귀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율동, 조화, 안정, 관계 등이 중요시되고 있다. 그가 모든 조형은 자신의 작품에서 자유와 평화, 평화를 지향한다고 한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조형은 자유(=여인), 평화(=물결), 평화(=, )등과 같은 상징적인 형상들과 서로 어울리면서 그가 지향하는 이상향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그의 작품은 밖에 존재하는 사실적 형상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마음 속 이상적 산수, 즉 바다의 천사(angel of the sea)나 이상향(dreamland)과 같은 심상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이 들면서 새로운 현대적인 감각을 추구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인간의 이상향을 구현하였던 동양의 전통산수화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많은 고대 화가들에게 회자되었던 당나라 장조(張璪)의 “밖으로는 자연의 조화를 배우고, 안으로는 마음의 근원을 깨닫는다. 外師造化, 中得心源”는 것이 바로 그가 추구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동양화론에 박식한 이지호 박사는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정통적 입장과 일치되어 자신의 환경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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